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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소모성 건국절 논란
끊이지 않는 소모성 건국절 논란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9.02.27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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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소모성 건국절 논란

이데올로기에 치중한 논쟁 지양해야 할 때

 

 

 

지난 2006년, 동아일보에 기고된 서울대 이영훈 교수의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칼럼에 의해 시작된 ‘건국절’ 논란. 대한민국의 건국을 1919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 1948년으로 봐야 한다는 여·야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며 치열한 공방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건국절에 대한 주장을 서로 굽히지 않고 이렇듯 날 선 구도를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야의 첨예한 대립

건국 시점을 1948년으로 보는 이들은 주로 보수 진영이다. 이들은 임시정부 수립 당시 국가를 구성하는 요소 중 ‘영토’와 ‘주권’ 등이 없었기에 국가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독립운동단체이자 건국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반대로 진보 진영은 ‘1948년 건국절’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이유는 우리나라 헌법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이 1948년이 아닌 1919년임을 입증하는 자료다. 실제로 1948년 7월 17일에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에 보면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라고 명시되어있다.

하지만 이는 박정희 정권이 제5차 개헌(1963년 12월) 때 바뀌게 된다.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한다’라고 말이다. 여기에서 ‘임시정부 법통’ 내용아 삭제됐고, 4·19는 의거, 5·16은 혁명으로 바뀌게 됐다.

 

이에 단국대학교의 한시준 교수는 자신의 저서 ‘역사농단’을 통해 “이승만은 해방 이후 건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발언한 적도 없다”며 “이승만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잇고자 했다”고 전한 바 있다.

하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이완범 교수는 자신의 논문 ‘건국 기점 논쟁’에서 “임시정부가 건국을 논의했다는 것은 임시정부에 의한 건국이 완전한 건국이 아님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며 “1945년 해방 직후 임시정부의 주석을 지낸 김구는 당시를 ‘건국의 시기로 들어가려 하는 과도적 계단’이라고 밝혔다”고 반박했다.

 

정권에 따라 또 다른 불씨 발화 가능

지난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를 출범할 정도로 ‘과거사 정리’를 주요 국정과제로 삼았던 노무현 정부. 당시 과거사위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부림사건 등을 포함한 각종 간첩 조작 사건 등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들을 복권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급진적인 과거사 청산에 보수층은 반발했고, ‘뉴라이트’가 등장하며 결집, 보·혁 간 첨예한 ‘역사 전쟁’이 시작되게 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에 들어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보수는 2008년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추진회’를 설립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규정할 뜻을 밝혔다. 본격적인 ‘건국절 논란’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당시 보수 진영은 일제로부터 독립한 1945년 8월 15일보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을 우선시해 8·15를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진보 진영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 건국 시점이라고 주장하며 대립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의 건국절 지정 시도는 국민적인 이념 논쟁으로 비화되며 결국 무위에 그치게 됐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정권을 잡은 박근혜 정부는 다른 방식으로 과거사를 정리하고자 했다. 극심한 갈등과 논란 속에 폐기됐던 ‘국정교과서’로 말이다.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까지 휩싸인 국정교과서 사업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중단된 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폐기됐다.

이처럼 10년 넘게 이어져 온 대한민국 건국 시점과 과거사 논란은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은 건국 100년’이라고 밝히며 일단락 지어진 듯했지만, 앞으로 정부 성향이 달라지면 다시 논란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한 전문가는 “‘그동안 이어진 건국 시기 논쟁을 차분히 돌아볼 시점이 됐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1919년 설과 1948년 설로 나뉘어 싸우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건국기념일을 숙의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 아우르는 진정한 건국의 의미 되새겨야

과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어져 온 ‘역사 전쟁’. 소모성 짙은 이 논란이 야기될 때마다 진보와 보수 모두 득보다는 실이 컸다. 서로 정권을 잡을 때마다 저마다의 ‘역사바로세우기’를 표방해 역사 재정립에 나섰지만, 결국 얻은 것은 격해진 이념적 대립과 국론 분열뿐이었다.

 

지난해 8월, 한국근현대사학회에서 주최로 열린 ‘독립운동, 그 기록과 기념의 역사’ 학술회의에서 창원대학교 사학과의 도진순 교수는 “중요한 사실은 통일이 돼야 한반도를 아우르는 건국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이제는 이데올로기에 치중한 건국절 논쟁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의 역사 기억 방식도 이제는 단순한 친일과 반일, 우익과 좌익, 남과 북의 대립 구도로는 지난 역사의 기억이 반쪽짜리가 될 수도 있으며 역사적 변화를 감당하기도 힘들 것”이라며 “이제는 남과 북이 소통해 더 확대되고 열린 시야에서 100년 전에 있었던 3·1운동과 임시정부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기다”고 강조했다.

 

건국은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자 역사적 과정이다. 게다가 우리는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된 아픈 역사를 품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 또 다른 건국의 과정이 발생될 여지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건국에 대한 이념은 논쟁을 통해 해소될 문제는 아니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고민과 참여, 정부의 일관된 태도와 여·야간의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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