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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에 사로잡힌 ‘블랙엔젤’
탐욕에 사로잡힌 ‘블랙엔젤’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9.05.09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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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에 사로잡힌 ‘블랙엔젤’

성공하면 ‘성과 공유’, 실패하면 ‘남남’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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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혹은 개인들이 모여 투자클럽을 결성하고 새로 창업하는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행위를 일컫는 ‘엔젤투자’. 초기 기업가들에게 이 같은 투자를 진행하는 엔젤투자자의 존재가 단비 같은 존재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다행히도 최근 대한민국에 스타트업 붐이 일어나며 해외와는 다른 형태인 ‘취미엔젤’과 같은 다수의 엔젤투자자가 등장할 정도로 대한민국 엔젤투자에 대한 시장이 활성화가 돼가고 있다. 하지만 일부 엔젤을 사칭한 부도덕한 투자자들로 인해 초기 기업가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탐욕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일명 ‘블랙엔젤’(Black Angel)들이 바로 그 원인이다.

 

‘엔젤’이라는 이름의 ‘브로커’

안정된 대기업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더 늦기 전 자신이 원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자 과감히 사표를 쓰고 창업에 도전한 IT 기업가 A씨. 부푼 꿈을 안고 사업자를 낸 A씨는 창업 후 불과 몇 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이 그리던 이상과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충분한 준비와 자본(퇴직금)을 마련했다고 생각했지만, 팀 빌딩부터 사업장 마련, 기획, 영업 등 사업을 위한 사전 준비를 위해 투입돼야 하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본은 상상 이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정부 지원 대출이나 초기 창업가 지원 프로그램 등 다방면으로 탈출구를 모색했지만,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사업자 등록증을 믿고 투자나 대출을 실행해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그때 그에게 찾아온 기업가 B씨. B씨는 A씨의 사업 아이템과 미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고, 선뜻 초기 사업화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일명 ‘시드투자’였다. A씨는 의심은 갔지만 당장 버틸 수 있는 자금이 필요했고, 매칭펀드를 통해 정부지원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말에 더 이상의 의심 없이 서류에 사인했다. A씨에게 B씨는 천사 그 이상의 존재였다. B씨가 투자 유치에 대한 수수료 요구와 정부 매칭펀드 성사 후 자신에게 현금으로 투자금 회수를 요청하기 전까지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A씨와 B씨의 관계는 전형적인 엔젤투자자와 투자처의 관계다. 정부의 매칭펀드까지 집행이 되는 전혀 이상할 것 없었던 이들의 투자 집행 과정이었지만, 마지막에 삐끗했다. 개인 투자와 정부 투자라는 매칭 펀드가 조성됐을 경우, 투자금의 원금 일부가 개인에게, 혹은 증빙이 불가능한 곳으로 사용됐을 경우 투자처의 대표자는 사기죄로 구속된다. 투자를 받았다는 명백한 증거는 있지만 어디로 자금이 사용됐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반편 엔젤투자자를 사칭한 블랙엔젤은 수수료 혹은 투자금 현금 회수에 대한 증거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제지가 가해지지 않는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 경우는 수많은 블랙엔젤 피해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대학 창업경진대회 등에서 수상을 하고 부푼 꿈을 안고 창업을 선언한 20대 창업가, 평생 회사원으로 살다 꿈을 펼치고자 밖으로 나온 시니어 창업가, 경력단절 창업가, 공직 출신 창업가, 해외파 창업가, 실패를 겪은 재창업가 등 블랙엔젤의 타깃이 될 배경을 가진 창업가들이 너무나도 많다. 블랙엔젤들은 이들에게 맞춤형 사기를 펼치고 다닌다.

 

경영과 창업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익명의 블로거는 “보통 시드투자 시 무리한 지분을 요구하거나, 기업 가치를 과도하게 책정해 매칭 펀드의 금액을 높이는 경우 블랙엔젤로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 ‘콜옵션’, ‘풋옵션’ 등 복잡한 옵션이 있는 경우도 의심할 필요가 있다”며 “지분이 과할 시 경영 전반에 간섭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기에 신중히 결정하고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 더불어 첫 시드투자의 규모가 필요 이상으로 집행됐을 경우 VC 투자, 시리즈A, 시리즈B 등 후속 투자단계로 넘어갈 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에 초기 엔젤투자는 어느 투자단계보다 신중히 투자를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자양분

자본이 절실한 스타트업과 같은 초기 기업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준 뒤 막대한 이익을 얻는 악질 투자자인 블랙엔젤. 성장을 위한 투자는 위험을 수반해야 한다는 공식이 있지만, 너무 큰 위험을 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블랙엔젤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스타트업 컨설팅 교육 크루인 데이원비즈에 따르면 “기업이 개인투자자나 엔젤투자자를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녹취하길 권한다. 투자자 중 사기꾼도 있기 때문에 녹취로 증거자료를 확보하면 좋고, 직접적인 현금거래보다는 금융기관을 통한 계좌를 통해 거래하길 권한다”고 전한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비정상적인 경로로 투자를 받도록 유혹하는 경우가 있다면 지체 없이 검찰에 신고해 송치하길 권한다. 추가 피해를 막고 스타트업 투자에 올바른 생태계가 조성돼야 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업계의 한 전문가는 초기 투자 시 대표자가 갖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크라우드펀딩’을 추천하기도 한다. 공개적인 곳에서 다수에게 투자를 받으면 블랙엔젤을 만나거나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를 진행하게 되는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어지기 때문이다. 국내 크라우드펀딩 기업 와디즈의 박진성 팀장은 “크라우드펀딩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보니 응원하는 팬이나 고객이 생기고 플랫폼을 눈여겨보던 투자자에게 후속 투자를 받을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초기 기업들의 안정적인 성장과 원대한 꿈 실현을 위해 투자는 대단히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이 기업의 심리를 이용해 불합리한 투자를 하는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의 허술함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투자자 중 가장 자유롭게 활동하는 엔젤 투자자와 이들이 모인 엔젤클럽을 법제화하는 움직임과, 전문 엔젤에 대한 인증 제도의 마련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업 실패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대한민국 창업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도 블랙엔젤이 활기를 치는 이유 중 하나라 지적받는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엔젤투자자와 투자처 대표는 사업이 성공할 때 성과를 공유하는 만큼 실패할 경우 이에 대한 리스크도 함께 분담해야 하는 방향으로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정부에서는 청년에 대한 창업을 장려하면서도, 이들이 실패했을 경우 짊어지게 될 무게에 대해서는 대책이 너무나 미비하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자양분으로 삼는 블랙엔젤들이 활동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창업 실패에 대한 탈출구 마련이나 과도한 책임 추궁을 하지 않는 생태계 조성을 정부 차원에서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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