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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선점에 활용되는 ‘프레임 전쟁’
여론 선점에 활용되는 ‘프레임 전쟁’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6.20 09: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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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선점에 활용되는 ‘프레임 전쟁’

지지층 결집에만 매몰돼 정치력 상실 우려도 제기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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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프레임은 우리 두뇌의 시냅스에 자리 잡고 있어서 한번 자리 잡으면 웬만해서는 내쫓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정치가 ‘프레임 전쟁’임을 나타내는 좋은 문구이기도 하다. 일단 하나의 프레임을 선점해놓으면 상대 진영은 그 구도에 갇혀 쉽게 빠져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각 정치세력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프레임을 만들어 지지층을 결집시킨다.

 

‘독재’ 단어 둘러싼 여야 공방

최근 정치권에서 화두가 되는 프레임은 이른바 ‘독재’이다. 1987년 체제로 불리는 6공화국이 들어선 뒤로는 쉽게 들어보지 못한 단어이기도 하다. 가급적 정치적 발언을 삼가던 문재인 대통령이 ‘독재자의 후예’ 발언으로 자유한국당을 정조준 한 것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문재인 정부를 ‘좌파 독재’로 규정하는 모습은 결국 모두 총선을 대비한 프레임 전쟁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누가 어떤 프레임을 선점해서 상대에게 미끼를 던지고, 어떻게 전장(戰場)을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만드느냐가 선거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이나 정쟁을 펼치는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프레임은 매우 단순하다. 내용을 상징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어를 통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장황한 설명 대신 막연하게 느껴지는 정치 진영에 대한 불만을 프레임을 통해 나타내면 공감대를 넘어서 정당의 주장에 동조하는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와 같은 명료한 메시지는 일반적으로 여당에 비해 야당이 유리한 입장에 있다. 권력을 가진 여권의 정책에 대한 실정을 프레임을 만들어 공세적 입장에 있는 야권에서 활용할 수 있어서다. 제대로 된 프레임이 형성되면 상대 진영의 프레임에 갇혀 이를 해명하는데 급급해져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펼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경제실패 프레임이 워낙 강력해 성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며 푸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주요 선거마다 영향력 발휘한 프레임

용어의 선점 경쟁을 통해 나타나는 프레임이 극명하게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 1987년 대통령 선거이다. 민주정의당의 노태우와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민주공화당 김종필 등 ‘1노 3김’이 맞붙은 당시 선거전에서 노태우 후보는 ‘보통사람’이란 슬로건으로 군부 출신이라는 이미지를 희석시켰다. 당시 김영삼 후보가 기치로 내건 ‘군정종식’이라는 프레임이 이에 밀리면서 결국 13대 대선의 승자는 노태우가 되었다.

 

또 한 가지는 2010년 6월에 있었던 지방선거를 들 수 있다.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2달여가 지나 치러진 선거라 보수 정당의 승리가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물론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당시 민주당이 슬로건으로 내세운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프레임은 당시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대북정책이 안보위기를 불러왔다는 것을 단순하게 표현하며 선거 판세를 역전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야당이 현 정권의 무능을 지적하며 ‘좌파 독재’ 주장을 반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하면서도 실제 체감 경기가 좋지 않은 현 상황에서 국민들이 듣기에는 설득력도 있어 보이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한 칼럼을 통해 “한국당이 ‘좌파 독재’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반복에 의한 프레임 형성’에 있다”며 “처음에는 국민이 별로 동조할 생각이 없다가도 자꾸 듣다 보면 ‘진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2020 총선’의 선거 구도는?

그렇다면 향후 총선 국면에 본격적으로 접어들게 되면 어떤 프레임이 형성될까? 전문가들은 2017년 탄핵 국면에서 치러진 대통령선거 당시의 ‘심판론 대 심판론’의 재현을 첫 손에 꼽는다. 촛불 혁명 당시의 목적을 상기시켜 적폐를 청산하고 보수 야당을 다시 심판해야 한다는 여당과 진보 진영의 프레임과 현 정부의 무능함을 강조하며 투표를 통해 심판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맞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여당의 경우 박근혜 정부 시절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 대표가 제1야당의 수장이라는 점에서 그 구도는 효과를 발휘할 것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지난 대선 때와 같은 ‘과거형 프레임’의 견지가 지지층 결집이나 표심 자극에 있어 실패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순애 정치평론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총선이 과거 회귀적인 프레임으로 치러진다면 미래지향적인 내용을 강조해야 할 여당 입장에서는 발전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심판받는 쪽은 미래지향적 내지는 다른 프레임을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프레임 전쟁을 통한 지지층 결집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현 시점의 문제 해결에는 소홀하지 않느냐는 비판도 제기한다.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한 상황에서 국회 정상화를 둘러싼 여야의 협상이 공전만을 거듭하며 도리어 공방전을 통한 지지율 상승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력 부재’의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그 피해가 다시 돌아간다는 점에서 마냥 프레임 전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정치 세력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민심조차 프레임 속에 가두는 오류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목소리는 귀를 기울이고 잘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지 이를 이용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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