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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자 Ⅰ] ‘복수’가 아닌 ‘공익’을 위한 결단
[공익제보자 Ⅰ] ‘복수’가 아닌 ‘공익’을 위한 결단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7.23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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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폭로

‘복수’가 아닌 ‘공익’을 위한 결단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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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자라 부르기도 하는 내부고발자는 조직의 부정과 비리를 알리는 사람을 뜻한다. 부정행위를 봐주지 않고 호루라기를 불어 지적한다는 뜻으로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라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 내부고발자는 단순히 자신의 안위를 위해 남의 허물을 일러바치는 밀고자가 아니라 공익을 위한 목적으로 제보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용감한 공익제보자들의 내부고발이 우리 사회를 어떻게 성장시켰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한국사회 뒤흔든 국정농단 촉발시킨 ‘고발’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그리고 2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나며 새 정부가 들어서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등 ‘국정농단’ 주역들에 대한 재판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사회를 뒤흔든 ‘박근혜 게이트’는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노승일 씨를 비롯해 박헌영 전 과장, 정현식 전 사무총장의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들이 검찰청 조사실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헌법재판소 재판정에서 증언하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다른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노승일 씨의 경우 삼성전자가 코어스포츠를 통해 정유라 씨 지원을 계약했던 시기에 작성된 문서나 최순실 씨와 나눈 메신저 메시지 등을 공개했다. 최순실 씨가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내용의 전화 음성 녹음,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만든 국정조사 청문회 대비 문건 등을 검찰과 국회에 제보하기도 했다.

 

노승일 씨는 최근 KBS ‘거리의 만찬’에 출연해 자신의 공익제보는 일방적인 해고를 두 번이나 가했던 최순실 개인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말한 바 있다. 그는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이 가장 무섭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 공익을 위해 결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던져 내부고발에 나선 사람들에게 사회적인 보상이 내려지는 삶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실제 노 씨는 박근혜 게이트 이후 서울을 떠나 광주에서 그동안 활동했던 체육과는 전혀 무관한 삼겹살집을 운영하고 있다.

 

폐쇄성과 보안 중시하는 집단일수록 내부자 생기기 어려워

개인이 거대한 조직을 이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지난해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던졌던 ‘미투 운동’을 촉발시킨 서지현 검사의 사례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권력 최고위층에 있는 검사조차 성폭력 피해와 보복 인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이 폭로되고, 검찰 내부에서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정황이 나타나며 이를 실행한 안태근 검사장은 법정 구속되었다. 그럼에도 서 검사는 인간관계나 업무능력을 통한 ‘피해자의 행실’에 대한 소문으로 피해를 받아야 했다. 서지현 검사는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변화 그리고 나아갈 방향’ 좌담회에 참석해 “피해 사실을 고백하면 인간관계와 업무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음해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대로 적중했다”며 “검찰 안에서도 ‘이제 그 누구도 서지현처럼 입을 열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2차 가해가 근절되기 전에 성폭력 피해는 없어지기 힘들 것이다”고 말했다.

 

정확히 10년 전인 2009년 김영수 전 해군 소령의 군납 비리 폭로도 빠질 수 없는 주요 내부고발 사건이다. 계룡대 근무지원단에서 납품비리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린 김 전 소령은 내부절차에 따라 육군 헌병, 해군 헌병, 국방부 감찰단 등을 통해 무려 여섯 차례에 걸쳐 이 사실을 고발했다. 근무지원단 관계자들이 금품을 받고 고가의 물품을 수의계약이 가능한 소액으로 분할해 특정 업체와 계약을 맺었고, 대금 일부를 현금과 상품권으로 돌려받는 식으로 9억 원을 빼돌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군당국의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되려 근무평점 최하위라는 결과만 돌아왔다. 이후 방송을 통해 폭로된 이후 국방부가 재수사에 나서 31명이 저지른 비위행위를 적발했다. 김 전 소령의 폭로가 없었다면 폐쇄적인 군대 내 비리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배신자’와 같은 낙인찍는 사회 지양해야

이처럼 정치권과 공직사회, 군 등 폐쇄성과 보안을 중시하는 곳은 일반인이나 수사기관이 쉽게 접근하기 힘든 특징이 있어 내부고발자의 용기와 어렵게 내뱉은 한마디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아직도 ‘배신자’와 같은 낙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부고발과 내부정보유출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 내용이 외교관을 통해 야당 의원에게 유출된 일이 대표적이다. 특히 청와대는 지난해 말부터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의 민간인 사찰 의혹 폭로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적자 국채 발행 관련 폭로 등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기밀 유출이냐 내부고발이냐를 두고 한동안 공방이 이어지기도 했다.

 

다행인 점은 내부고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이해도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공익신고 건수는 3,923건으로 전년 대비 55.6%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폭로한 박헌영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내부고발의 동기가 영웅이 되기 위해서인 경우는 하나도 없다”며 “누구든 공익제보를 할 수 있고, 제보를 하면 더 나은 사회가 되고, 제보자는 그에 응당한 포상과 대우를 받는 게 옳은 사회”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타인의 권리와 명예를 침해하지 않는 범주 안에서 자신이 체감하는 부조리와 문제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부고발이 청렴사회의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 부당함을 말하지 못하는 내부 조직 분위기는 개선되고, 법과 사회는 이들을 보호하면서 공익신고의 가치가 널리 인정받는 사회문화가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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