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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 ’이영표‘
[단독 인터뷰]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 ’이영표‘
  • 김갑찬 기자
  • 승인 2019.09.01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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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는 축구 인생 후반전

 

 

사진=김갑찬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행정과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한국축구의 발전은 빨라질 것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2012년 런던 올림픽 동메달,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승리에 이어 지난여름 대한민국이 또다시 축구로 들썩였다. 약관의 태극전사들이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대한민국의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기 때문이다. 대회 시작 전까지도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은 역대 최약체로 평가 속에 팬들의 관심도 그리 높지 않았다. 예선 첫 경기에서 패하며 세간의 평가가 현실이 되는 듯했다. 반전은 이제부터였다. 정정용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과 이강인을 중심으로 원팀으로 뭉친 대표팀은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한국 남자 축구 역사상 FIFA 주관 대회 첫 결승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이들은 아쉽게 결승전에서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강인이 대회 MVP인 골든볼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모든 선수와 지도자, 스태프가 흘린 땀의 가치는 우승 못지않았다. 이 순간 자연스레 많은 축구 팬은 2002 한일 월드컵의 기적을 떠올렸다.

23인의 태극전사가 만들어낸 2002 월드컵의 4강. 그 중심에는 부동의 왼쪽 윙백으로서 세계적 선수들을 막아낸 ’초롱이‘ 이영표가 있었다. 월드컵 이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한 이영표는 이후 세계 최고의 무대인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 독일 분데스리가 ’도르트문트’에서 활약하며 대한민국이 아닌 월드클래스 급 선수로 성장했다. 현역 생활 막바지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와 미국 MLS 리그를 거치며 선수로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기도 했다. 또한, 국가대표로서도 2002 월드컵 이후 2006 월드컵과 2010 월드컵을 포함 A매치 통산 127회를 출전하며 10여 년 가까이 국가대표팀의 왼쪽 수비를 책임졌다. 그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기복 없는 성실한 플레이로 뛰어난 커리어를 이룬 것은 물론 훌륭한 인성으로 후배 선수들과 팬들에게 귀감이 되고 모범이 되었던 이영표. 그는 2013년 정든 유니폼을 벗으며 모두의 박수 속에 당당히 그라운드를 떠났다. 멋진 지도자가 되길 바라는 축구 팬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은 축구 행정가가 더 적합하다며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대한민국 축구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이영표의 축구 인생 2막을 2019년 9월 이슈메이커가 함께해 보았다.

 

 

사진=전상현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최근 근황이 궁금하다

“얼마 전까지 오랜 시간 해외에 머물렀다. 한국에 돌아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스포츠 혁신 위원회에서 스포츠클럽 활성화 관련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축구 관련 행정적 업무나 강연 등을 다닌다.”

 

사회적 기업 ‘Socks Up’의 대표로서 업무도 바쁠 것 같다

“사실 지금까지 ‘Socks Up’의 이야기는 외부에 잘 하지 않았다.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있었기에 굳이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보통 축구선수가 넘어지며 일어나는 순간 양말을 다시 잡아당기며 추스른다. 이를 ‘Socks Up’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우리 주위의 지치거나 힘든 이들을 위해 다시금 그들의 손을 잡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했다. 곧 코드 쿤스트와 ‘Socks Up’이 함께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니 기대해 달라.”

 

해설위원으로서 바라본 축구는 어떤 점이 달랐나

“솔직히 처음 해설위원을 맡은 이유는 월드컵을 현장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컸다. 선수로서 3번의 월드컵에 참여했지만, 월드컵 개막전과 결승전을 직접 본 경험은 없다. 다행히 시청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의도와 다르게 제 멘트가 다른 선수들을 비난하는 빌미가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방송사의 재계약 요청을 거절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해설을 하며 느낀 점은 축구 자체는 똑같지만 그라운드 위의 선수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기가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묵묵히 자기 일에 집중하는 수많은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나도 좋은 경기를 했다는 깨달음이 있었고 이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지도자가 아닌 축구 행정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의 모습이 있지만 제가 그렇게 된다는 자신이 없었다. 이미 국내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많다. 개인적으로도 지도자로서 기술과 경험을 전하는 것보다 행정적 발전을 돕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기술과 행정 이 두 가지가 함께 이뤄진다면 그 시너지는 폭발적이다. 지도자가 되는 것만이 축구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과 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꼭 필요하다.”

 

최근 후배들이 이룬 U-20 월드컵 준우승의 감회가 남다르지 않았나

“당연하다. 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부분을 이뤄낸 후배들이 대견했다.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하고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기뻤다. 다만 이들에게 해주고픈 이야기가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주니어 대표가 청소년 대표가 되고 이들이 올림픽 대표까지 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들이 지금처럼 잘 성장해준다면 대한민국 축구의 또 다른 황금세대가 되겠지만 이는 오롯이 그들의 몫이다. 지금부터가 선수 커리어를 위한 싸움의 시작이다. 지금 성적에 절대 만족하지 말고 더 나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사진=전상현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이영표가 전하는 축구 인생 최고의 경기

현역 시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쌓아온 이영표. 그렇기에 지난 선수 생활을 돌아보며 그에게 어떠한 미련과 아쉬움도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달랐다. 축구는 즐거운 스포츠임에도 자신은 프로가 된 이후 ‘이겨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과 부담으로 축구를 즐기지 못한 것이 지금 이 순간 가장 아쉬움으로 남는다는 이영표. 반대로 그가 꼽는 인생 최고의 경기는 무엇일까? 축구 팬이라면 한 손에 꼽기 힘든 그의 수많은 명경기가 있겠지만,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인생 경기는 따로 있었다. 그는 현역 시절 유독 축구가 잘된 날이 있다며 이런 날은 감독, 동료, 상대 선수, 심판 모두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모든 플레이가 상상과 계획대로 이뤄졌다고 한다. 현역 시절 7~8차례 이런 경기가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순간들이 이영표의 인생 경기였다고 한다. 이영표가 전하는 또 다른 축구 이야기가 궁금해 인터뷰를 이어갔다.

 

처음 유니폼을 입고 축구공을 찼을 때의 느낌을 기억하는지

“초등학교 4학년 육상선수에서 코치님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했다. 혼자 아무 생각 없이 달리는 것 보다 함께하는 축구가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의 느낌이 특별하진 않았다. 다만 축구공이 자꾸 도망간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당시 실력이 부족했기에 나는 다가가도 공은 멀어져만 갔다. 흡사 연애 초기 밀당의 기분이기도 했다.”

 

 

 

사진=전상현 기자
사진=김갑찬 기자

 

2002 월드컵을 빼놓고 축구 인생을 설명하긴 어렵다

“당시에는 우리가 월드컵에서 1승을 해본 적도 없기에 지금 생각하고 바라보는 월드컵과는 다르다. 세계적 축구 강국도 월드컵 4강이면 만족스러운 성과라고 생각한다. 월드컵에서 1승도 해보지 못한 나라가 4강 진출에 성공했고 이는 한국 축구를 바꿨고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을 바꿨으며 제 삶을 바꾼 순간이다. 아직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벅차오른다. 이는 선수들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결과가 아니다. 홈 경기의 이점과 훌륭한 지도자, 전폭적인 국가의 지원, 전국민적 응원 등 모든 것들이 합쳐져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2002 월드컵 4강 신화가 재현될 수 있을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런 날이 꼭 다시 왔으면 한다. 대한민국 축구사에서 2002 월드컵처럼 런던 올림픽 동메달이나 이번 U-20 월드컵 결승 진출 등 가끔 기대하지 않은 좋은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보다 앞으로 우리가 축구 강국으로 꾸준히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보여준 전례가 있기에 앞으로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시스템과 행정적인 부분의 개선은 물론 유소년 축구에 대한 지원과 관심도 필요하다.”

 

20년 전의 이영표, 20년 후의 이영표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다면

“20년 전의 나에게 공부나 축구 등 무엇을 하더라도 지금까지보다 더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고 싶다. 성실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가치다.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면 탁월해질 수 있다. 대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목적이 되지 않길 바란다는 말도 함께 해주고 싶다. 축구 인생을 돌이켜보면 남들에게 인정받으며 돈 많이 벌고 인기와 명예를 얻으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 부분이 지난 삶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꿈을 가지고 열정을 가지되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20년 후의 나는 그 나이에 맞는 더 넓고 깊은 마음을 가졌는지 확인해봤으면 한다. 성품, 인성, 여유, 시선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터뷰를 마치며 최근 그는 ‘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나’라는 물음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소유가 행복의 기준이기에 많이 가지면 행복하고 작게 가지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혹은 빈민국과 비교하면 우리는 수많은 것을 가졌지만 그때보다 그들보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그는 이 물음의 답을 “진짜 행복은 소유와 상관없이 또한 상황과 환경 조건과 별개로 지금 즉시 느낄 수 있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내렸다. 인생을 살아가며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가치를 부여하는 이들에게 행복이 찾아간다며 이 글을 읽는 모두가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는 이야기로 이영표의 울림 가득한 축구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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