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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콧 Ⅱ] ‘지나가는 들불’ 대신 ‘똑똑한 문화운동’으로 진화
[보이콧 Ⅱ] ‘지나가는 들불’ 대신 ‘똑똑한 문화운동’으로 진화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9.08.26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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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들불’ 대신 ‘똑똑한 문화운동’으로 진화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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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반발한 일본의 보복성 수출규제 조치 이후 일본기업 제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고, 일부 기업들의 망언과 실언이 이어지며 단발성으로 그칠 것이라는 일부 시선과 달리 ‘보이콧 재팬’ 열기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기세가 매섭다. 패션과 가전제품, 자동차부터 화장품, 음식 등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에 걸쳐 예외를 따지지 않고, 단순히 소비자들의 구매 거부가 아닌 공급자들 역시 적극 동참하는 상황이다. 성난 민심을 대변하듯 불매 대상인 일본 제품과 대체재를 소개하는 ‘노노재팬’이라는 웹사이트까지 만들어졌다. 이에 더해 일본 여행을 가지 않거나 예정된 여행을 취소하고, 주말마다 일본 정부를 교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등 전례 없을 정도의 열기가 더해지고 있다.

 

대표적 불매운동 표적이 된 기업은 유니클로다. 글로벌 SPA 브랜드 중 독주 체재를 달리던 유니클로는 모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오카자키 타케시 최고재무책임자(CFO)가 결산 설명회에서 “불매운동의 영향이 장기적으로 계속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하며 성남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했지만 유니클로의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업계에 따르면 여름 세일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한 달 매출이 30% 가까이 줄었고, 매장 중 한 곳의 폐점을 결정하는 등 여파가 곳곳에서 나타나는 중이다. 네티즌들은 텅 빈 유니클로 매장의 사진을 찍어 SNS에 인증하며 불매를 독려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 화장품 브랜드 DHC가 문제가 됐다. 자회사인 DHC텔레비전을 통해 방영한 정치 프로그램에서 “한국은 원래 금방 뜨거워지고 금방 식는 나라”, “조센징들은 한문을 문자화하지 못해 일본에서 만든 교과서로 한글을 배포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예술성이 없다” 등의 혐한 발언을 쏟아내며 본격적인 불매운동이 펼쳐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양국 간 문화교류 역시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포함된 기획전이 사흘 만에 중단되며 논란이 일었고, 한일 가수들의 합작 프로젝트가 전면 중단되거나 일부 일본 영화는 국내 개봉이 취소되기도 했다.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많은 젊은이가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 관련 사건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은 좋은 점이다”며 “이걸 계기로 일본의 역사 왜곡을 전 세계에 널리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 올림픽 보이콧 목소리까지 나와

불매운동이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 일부의 극단적인 반일 기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民)’이 잘하고 있는데 ‘관(官)’이 왜 나서는 것이냐는 비판이다.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은 서울시청과 명동, 청계천 일대에 ‘No Japan(노 재팬)’이라는 배너를 설치했다가 시민들의 항의를 받아 다시 내리는 촌극을 빚었다.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최재성 위원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도쿄를 포함한 일본 전역을 여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가 번복하기도 했다.

 

도쿄올림픽 보이콧에 대한 의견까지 나왔다. 김민석 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부위원장은 외신기자클럽 간담회를 통해 “도쿄올림픽은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을 깨는 도구로 이용되기 시작하고 있다고 본다”며 “아베 총리가 경제전쟁을 즉각 중단하고 그 원인이 됐던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민간 불매운동으로 발전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신동근 의원 역시 “안전성이 담보되지 못한다면 도쿄올림픽을 거부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올림픽에는 참가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하며 서둘러 진화에 나선 상태다.

 

전문가들은 ‘보이콧 재팬’ 움직임에 대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정치권의 지나친 반일 감정 유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불매운동은 누구의 강요가 아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뤄졌다”며 “오히려 정치권이나 정부가 나서서 불매운동을 주도하면 애초 시민 자발적인 불매운동의 목적이 퇴색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시민 중심의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나가는 들불’이 되지 않도록 일본 정부의 정책 부당성을 알리는 촉매제로 활용하면서도, 이와 동시에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거나 불매운동을 악용하는 일을 경계하는 성숙한 태도 역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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