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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간 경계 허물어뜨리는 ‘빅블러’의 도래
산업 간 경계 허물어뜨리는 ‘빅블러’의 도래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9.09.26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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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간 경계 허물어뜨리는 ‘빅블러’의 도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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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계속되는 기술 발전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유통 공룡, 빅테크 기업들의 본격적인 시장 진입이 이어지며 국내에서도 업종 간 경계가 희미해지는 ‘빅블러(Big-blur)’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새로운 경제망 등장의 촉매

집에서 장을 보고, 마트에서 은행 업무를 본다. 은행이 아닌 핀테크 기업을 통해 송금을 하고 검색 포털에서 쇼핑을 한다. 편의점에서 교통카드를 충전하기도 한다. 온라인 기업이 오프라인으로 진출하고,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뷰티 산업에 진출한다. 유통기업은 외식산업에 진출한다. 이른바 이종 산업 간 융합을 일컫는 빅블러(Big Blur)를 나타내는 사례들이다.

 

미래학자 스탠 데이비스가 지난 1999년에 출간한 저서 〈블러: 연결 경제에서의 변화 속도〉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인 빅블러는 빠른 사회적 변화로 인해 기존의 영역과 법칙이 무너지고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는 연결성(Connectivity)과 속도(Speed), 무형적 가치(Itangibles)를 빅블러가 만들어진 원인으로 지목하며, 이를 통해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연결돼 상품과 서비스가 하나로 묶이거나, 전통적인 판매자와 구매자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거래 형태가 복잡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했다. 또한, 생산과 판매 사이의 시간 단축이나 제품 수명 단축, 빠른 산업 변화 등의 변화는 기업과 기업, 기업과 환경 간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경제망(Economic web)을 등장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경쟁 기업이 손을 잡는 현상도 빈번해지고, 소유와 사용, 구조와 과정, 현실과 가상 등의 구분이 사라지며 개인의 기업화가 진행된다고 전했다.

 

금융권으로도 번진 빅블러

많은 산업 분야 중 보수적인 분야 중 하나로 꼽히는 금융 분야에도 빅블러의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카카오페이, 삼성페이, SK페이 등으로 인해 시작된 ‘임베디드 뱅킹’(embedded banking)이 그 예다. 뿐만 아니라 핀테크 분야의 빠른 발전이 금융 시장의 변화를 부추겼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로 인해 금융권은 기존 전업주의를 극복하고 통합 모바일 금융 서비스를 구축해 소비자를 잡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내년 상반기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머니 ‘리브라’를 출시해 송금, 결제 등 금융거래 전반에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세계적 금융회사인 JP모건도 기업 간 송금 및 채권 거래에 사용할 디지털 머니 발행을 예고했다. 국내에서도 카카오와 네이버가 디지털 머니와 전자 지갑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금융사와 통신 3사, 휴대폰 제조사가 동시에 참여하는 대한민국 대표 모바일 인증서비스가 2020년에 등장한다. 금융회사의 수준 높은 보안인증서비스와 통신 3사의 안정적인 통신서비스 경험, 휴대폰 제조사의 풍부한 모바일 사업 노하우의 결합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대단한 시너지 효과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과 산업계, 핀테크가 염원하고 있는 융복합 금융서비스의 핵심인 데이터 3법이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기에 대한민국 금융의 혁신을 위해 다각도로 접근이 필요한 실정이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빅블러 현상은 기술 발전에 따라 글로벌 금융권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추세”라며 “새로운 기술을 기존 제도가 쫓아가지 못해 규제의 공백이 생기거나 소비자 정보 유출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전했다.

 

신사업에 빠르게 녹아 들어갈 것

앞서 언급한 산업계 빅블러 현상은 업종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기존보다 더 큰 편리함을 경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IT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해킹이나 사이버 위협 등도 발달하기 시작해 보안위협과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나타남은 물론 대규모 자본들이 빅블러 현상을 주도하며 거대 자본이 상대적으로 적은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이들의 입지가 축소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 기기를 이용해 디도스(분산서비스 거부공격) 공격이 증가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이에 대해 경제학계의 한 전문가는 “이종 산업 간의 영역 파괴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일 것”이라며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이 같은 흐름에 동참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어 “정부가 산업정책 측면에서 이들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전문가는 “업체에 따라 규모와 전략, 특성의 차이가 있기에 기업은 자신이 생존을 위해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그에 맞는 전략을 구상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첨언했다.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앞으로 빅블러는 혁신적인 융·복합 기술로 인해 등장하는 신사업에 빠르게 녹아들 것이다. 때문에 기업과 개인은 이 같은 변화를 유의미하게 받아들여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고자 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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