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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미학을 실천한 시인 윤동주​
부끄러움의 미학을 실천한 시인 윤동주​
  • 김남근 기자
  • 승인 2020.02.07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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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미학을 실천한 시인 윤동주​

 

 

 

ⓒWikimedia commons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 시절 평소 존경했던 정지용 시인을 만난다. 윤동주 뿐만 아니라 당대 지식인들은 일본으로 유학길을 나섰고, 그는 정지용에게 이를 부끄럽다고 말했다. 동무들을 따라 독립운동에 선뜻 나서지 못한 윤동주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시에 담아 기록했다. 

 

창씨개명에 따른 참담함과 자신의 나약함을 시로 표현

 

윤동주가 졸업한 연희전문학교 후신인 연세대학의 학적에 따르면, 그는 1942년 1월 29일 ‘히라누마’로 창씨개명을 했다. 그는 이름을 계출하기 전, ‘참회록’이라는 시를 씀으로써 창씨개명에 따른 고통과 현실의 비애를 담았다. 이 시는 윤동주가 조국에서 쓴 마지막 작품이다. 이에 그의 창씨개명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위한 도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는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시작한다. ‘거울’이 가지고 있는 문학적 상징은 반성과 성찰로 나타나는데 이 시도 예외는 아니다.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며 치욕의 감정을 느낀 윤동주는 왕조의 몰락이라는 표현을 쓰며 역사의 행위를 외면했던 그가 살아온 ‘만 이십사년 일개월’을 반성했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은 이 시에서 ‘미래’와 ‘그 어느 즐거운 날’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개인과 민족이 나아갈 밝은 미래를 제시했다. 따라서 그의 시는 부정적 현실을 담고 있을지라도 희망을 담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적인 시 ‘별 헤는 밤’에서는 창씨개명을 한 자신의 부끄러움과 일제 치하에서 타국에서 떠돌았던 조선인의 회한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시에서 나타나는 별들은 윤동주 시인이 그리워하는 것들을 상징한다. 그는 멀리에 있는 어머니, 어릴 적 친구들, 이웃 사람들, 비둘기, 강아지 등과 같은 이름을 별 하나하나에 의미부여를 하고 스스로의 이름을 부끄러워한다. 그는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라고 썼다. 또한, ‘어머니’는 이 시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이미지이다. 윤동주에게 어머니는 별과 유사한 내포적 의미를 가진 상징으로 과거의 그리움과 현재의 부끄러움을 치유해주며 긍정적인 미래를 상징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겨울이 지나가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비롯해 모든 것이 치유되고 자랑스러운 앞날을 소망하며 희망의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시인 윤동주

 

윤동주 시인은 일제 치하의 지식인으로 살아가며 독립투쟁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못한 자신의 나약함과 정신적 고통을 노래했다. 이에 대표적인 시는 윤동주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쉽게 쓰여진 시’이다. 윤동주는 이 시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썼다. 그는 오랜 친구였던 송몽규를 비롯한 동지들이 최전선에서 죽음을 각오로 행동하는데도 쉽게 시가 쓰여진다는 것에 대한 비통함과 죄책감을 표현했다. 이는 시를 쓰는 일밖에 할 수 없는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운 일로 인식하게 되는 것으로 삶에 대한 회의를 보여준다. 또한, ‘시대처럼 올 아침’이란 표현은 앞으로 현실을 극복하고 밝은 미래에 대한 의지를 상장한다. 즉, 이 시에서 앞선 시들과 동일하게 윤동주는 자기 자신에 대한 끝없는 회의감과 좌절, 그리고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시로 묘사하며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윤동주 시인은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성의 결여로 인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시대적 양심을 잃지 않았다.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첫 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인 ‘서시’에는 결백한 삶에 대한 작가의 강렬한 의지가 돋보인다. 그는 도덕적 판단의 기준인 ‘하늘을 우러러’보며 ‘한 점 부끄럼 없기를’소망했다. 뿐만 아니라, 시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표현은 윤동주가 비겁함이 아닌 인간적인 나약함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밤하늘 아래’라는 표현으로 어두운 시대 상황을 표현하며 ‘별’은 양심적 상징으로 미래에 올 희망을 시로 묘사했다. 또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시행에서는 그가 주어진 현실을 직면하고 조국과 민족의 고난을 감싸 안는 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는 현실의 고난과 참담함 속에서 자신의 도덕적 양심을 지키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했던 지식인의 소망을 해갈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국의 차가운 감옥에서 숨을 거뒀다. 철저한 자기 검열과 양심 앞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했던 그의 작품들은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피로 얼룩졌던 시대가 지나가고 2017년,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목숨을 조국의 독립과 맞바꿨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희생이 만든 편안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들만큼이나 가치 있는 기록적 투쟁을 했던 시인 윤동주. 영화 ‘동주’에서 정지용 시인은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네. 부끄러움을 외면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라고 말했다. 그가 고백했던 부끄러움은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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