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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수록 용감해지는 이유는?
모를수록 용감해지는 이유는?
  • 손보승 기자
  • 승인 2018.11.07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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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수록 용감해지는 이유는?

‘진정한 앎’을 깨닫기 위한 자세 요구

 

ⓒWikimedia Commons
ⓒWikimedia Commons

 

실력도 없으면서 큰소리치며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력은 좋되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도 있다. 전자는 흔히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담이나 ‘근자감’과 같은 신조어로 표현할 수 있고, 후자는 공부 잘하는 친구가 ‘시험 망했다’며 푸념하는 경우를 예를 들 수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원리를 설명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더닝 크루거 효과’다.

자기 평가를 부풀리는 인지적 편향성

‘더닝 크루거 효과’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채지 못하는 현상으로 심리학 이론의 인지편향 중 하나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미국 코넬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데이비드 더닝과 그의 제자였던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가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인지편향 실험을 통해 1999년 제안했다. 이들은 당시 45명의 학생에게 20가지의 논리적 사고 시험을 치르게 한 뒤, 자신의 예상 성적 순위를 제출하도록 주문했다. 그 결과 성적이 낮은 학생은 예상 순위를 높게 평가했지만, 성적이 높은 학생은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더 나아가 이 실험에서는 능력이 없는 사람은 타인의 능력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무능력한 사람이 능력을 향상시키고 나자 그제야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달으며 과도한 자신감이 줄어드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를 통해 두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의 착오는 자신에 대한 오해에 기인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의 착오는 다른 사람이 더 잘 할 것이라는 오해에 기인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실험의 영감을 받은 계기가 흥미롭다. 1995년 은행털이범 맥아더 휠러는 미국 피츠버그에 위치한 은행 두 곳에서 돈을 훔쳐 달아났는데, 1시간 뒤에 경찰에 붙잡히게 된다. CCTV에 그의 맨 얼굴이 온전히 찍혔기 때문이다. 경찰이 이 모습을 휠러에게 보여주자 그는 ‘레몬주스를 뿌렸는데’라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고 한다. 레몬주스를 투명 잉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레몬주스를 바르면 얼굴이 투명해져 화면에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잘못된 주장 밀어붙이는 경우 경계해야

지난 3월 미국 미시간대학교 연구팀은 이를 추가로 증명하는 하나의 실험을 진행해 ‘실험 사회 심리학저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테러리즘, 부의 재분배 등 논쟁이 되는 정치적인 이슈를 바탕으로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선다형 퀴즈를 통해 믿음에 대한 우월감이 해당 주제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인지 살폈다. 실험에서 믿음에 대한 우월감이 큰 사람일수록 스스로 인지하는 본인의 지식과 실제 지식 사이에 큰 격차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믿음에 대한 우월감이 크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더불어 연구팀은 믿음에 대한 우월감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과 연관이 있는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하는지도 살폈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만 보고, 의견이 다른 새로운 정보는 살피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이와 같은 실험 결과를 통해 우리는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보다 ‘안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큰 문제가 생긴다며 잘못된 믿음을 퍼트리거나 잘못된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일상생활은 물론 공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박성준 평론가는 “기업의 대표가 자신의 무지를 인지하지 못한 채 고집스런 경영방침을 내세우거나, 유력 정치인이 자신의 사고에만 치우친 의견만 내놓는다면 그 조직과 국가는 도태되기 마련이다”며 “일반인들 역시 누군가와 논쟁이 붙을 경우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처럼 겉으로 보기에만 번지르르한 말뿐인 허세를 보이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엇을 배워야 할까?

많은 전문가들은 ‘오픈 마인드’로 다른 사람의 비난과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평등한 권리가 평등한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우매한 사회를 만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국해군대학의 톰 니콜스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러시아 관련 자료를 게재할 때마다 댓글로 그를 가르치려 드는 자칭 전문가들에 분노하며 인터넷 검색으로 획득한 자료와 신문 기사 몇 개로 수십 년간 공부해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습득했다 착각하는 사람들의 세태를 지적했다.

이처럼 더닝 크루거 효과는 우리의 일상 속에 다양하고 사소하게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이 현상을 바라보며 경계해야 할 것은 지나친 자신감 혹은 과잉된 불안감이다. 얕은 지식이 있는 상황에서는 단편적인 상황만 바라볼 위험이 크고 다양한 시각을 넓히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자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나치게 소심하고 신중하게 스스로를 의심하는 성격은 매사에 확신이 없고 자신감 없는 사람처럼 비추어질 수 있다. 결국 더닝 크루거 효과는 우리에게 자신을 객관화하고 정확히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이 필요함을 요구한다. 두 가지 심리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더닝 크루거 효과에 빠지지 않고 지혜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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