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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법’
전관예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법’
  • 김남근 기자
  • 승인 2018.12.1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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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법’

그릇된 행동 인정하고 근절하기 위한 행동 실천해야…

 

법원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바닥에 떨어졌다. 전관예우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국민 10명 가운데 4명은 그렇다고 했지만, 판사들은 단지 23%만이 그렇다고 답한 것이다. 국민이 사법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시각차가 명확하게 드러난 셈이다. 반면 법조계 내부에서 시행된 조사에서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답한 변호사는 75.8%, 검사는 42.9%로 전관예우에 대한 내·외부의 온도 차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전관예우에 대한 문제는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왔지만, 이번처럼 직접적으로 조사 결과가 수면 위로 드러난 적은 없었다.

 

사법농단 후폭풍 본격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 의혹의 핵심 역할을 맡은 임종헌(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기소됐다. 임 전 차장은 검찰 수사 대상이 된 전·현직 법관 가운데 최초로 구속 수감된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를 계기로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임 전 차장의 구속을 발판삼아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전관예우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대중들은 임 전 차장의 기소를 기점으로 법원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며 사법 불신이 더욱 커지고 있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의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박 전 대법관의 배석판사 출신인 게 알려지며 영장심사의 공정성 논란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번 사법농단 사건을 통해 또 다른 형태의 전관예우가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과거의 전관예우가 고위 법관이나 검사가 퇴직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자신이 변론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혜성 처우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 이해됐다면, 이번에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출신의 고위직 전관들이 변호사 신분이 아닌 형사피고인 신분으로 일종의 특혜성 처우를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전관’의 연고 관계인 담당 판사와 변호사의 공정성 시비를 가리기 위한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형사피고인 신분인 전관과의 연고 관계에 대한 장치는 따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 사법부에 대한 대중들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지고 있다. 한술 더 떠 ‘전관예우’가 존재하는지 대법원이 실시한 인식 조사 결과 판사들만 유독 ‘전관예우가 없다’고 조사되며 더 큰 공분을 사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그동안 전관에 대한 예우를 막기 위해 법적으로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왔지만, 이에 대한 형사 처벌 조항이 아닌 변호사협회 차원에서 자체 징계만 내려지고 있어 실효성 문제가 많다”며 “전관예우에서 말하는 ‘예우’는 ‘예의를 지켜 정중하게 대한다’라는 뜻인데, 전관 변호사에게 특별한 이익을 주는 불법 행위가 예의를 갖추고 정중함을 표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는 어렵다. 전관예우라는 말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불법행위에 걸맞은 단어를 찾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개혁의 무풍지대에 남은 사법부

지난 19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명언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탈옥수 지강헌 사건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시 지강헌은 자신은 겨우 500여만 원 절도범 수준인데 비해 당시 70억 원을 횡령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동생 전경환이 형기가 더 짧다는 데 상대적 불만을 가진 상태로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중 탈주했다. 당시 많은 국민은 공포에 떨었고, 그들이 벌인 인질극은 TV로 생중계되며 큰 관심을 끌었지만, 30년이 지난 오늘은 그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 그가 외쳤던 말의 핵심은 ‘전관예우’였기 때문이다.

 

OECD 회원국 중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가 최하위권 수준인 대한민국. 지강헌 사건과 같은 굵직한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사법부는 달라지지 않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전관예우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법관들이 전관예우의 존재를 인정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사법부 불신의 주체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김창룡 교수는 한 칼럼을 통해 “전관예우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민이 아닌 바로 법”이라며 “정권이 바뀌고 법무부 장관이 수없이 바뀌었지만, 전관예우 문화는 전통이 돼 이 나라의 법치사회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전 대법원장도 사법처리 리스트에 오르내리는 현실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법부가 얼마나 개혁의 무풍지대에서 폐쇄적인 조직으로 남아있는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관예우 청정국으로 알려진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 행동 지침’을 통해 재판관들의 재임뿐 아니라 퇴임 이후의 태도에 못을 박고 있다. ‘재판관들은 임기 종료 후 자신의 임기 중 재판소에 계류됐거나 그러한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 대해 활동하지 못하며, 임기 종료 후 1년 내 자신의 소관 사무 영역에서 어떠한 자문 활동도 맡아서는 안 된다’는 조항과 ‘전관은 의견서를 작성하면 안 되고 변호인이나 참고인이 되어서도 안 되며 재판소에 출석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재판소 내부에서 알게 된 사항을 부적절하게 이용한다는 인상을 피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조항이 명기돼 있다. 또한, 우리나라와 달리 평생 법관제가 정착돼있는 독일은 이로 인해 전관의 변호사 개업을 원천 차단되기에 전관예우를 근절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외에도 퇴임 뒤 변호사 개업 금지가 법관 임용 조건인 영국, ‘퇴임 뒤 행정장관 허가 없이는 홍콩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는 홍콩, 변호사협회의 윤리 규칙상 퇴임 뒤 3년간은 주변호사협회의 승인을 받아야 퇴임 당시 근무지나 그 하급법원의 사건을 맡을 수 있도록 수임 제한 규정을 둔 캐나다, 미국변호사협회 윤리 규칙에 따라 변호사는 판검사와 연락하거나 결탁하는 게 금지되고 이를 어기면 징계를 받는 미국 등의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 사법부 전관에 대한 처우가 어떠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모든 전·현직 판검사가 전관예우를 행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전관예우에 대한 책임은 전·현직 판검사에게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잘못된 행동을 인정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행동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일 때 대한민국 사법부의 권위와 신뢰가 회복할 수 있을 것임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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